경기침체·물량감소 이어지면서 주력업종 외 타 영역진출 이어져
배전반·변압기 업계, 제품개발 서두르며 태양광·GIS·개폐기 시장 노크

신중하게 ‘선택’하고, 선택한 뒤에는 오로지 그 일에만 ‘집중’하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은 강철왕 카네기의 성공법칙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기차 플랫폼을 걷던 카네기를 알아본 한 청년이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아침에 일어나 그날 할 일을 20개 정도 적어보고, 중요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하루에 최소 3가지 정도에만 집중해라.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일을 다 하지 못한다면 1번으로 정했던 일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여러 변수들을 고려해 하나의 선택지를 고르고, 자신의 선택을 믿으면서 집중할 수 있는 열정은 성공의 길로 들어서는 지름길임에 틀림없다.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을 맡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두 차례의 승부수를 통해 화학분야 계열사를 정리하고, 사업을 IT, 바이오, 금융 등 3개군으로 재편한 것도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중전기기 업계에서 나타나는 기업들의 모습은 ‘선택과 집중’ 전략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기존의 주력업종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규영역으로 입지를 넓혀가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수주경쟁이 치열한 수배전반 시장에서는 이런 흐름이 두드러진다.

관수시장의 강자로 군림했던 케이디파워와 베스텍 등은 일찌감치 태양광 분야로 영역을 넓혀 입지를 굳혔고, 특히 케이디파워는 LED조명사업에도 뛰어들어 최근 조달시장과 스마트조명 부문에서 선전하고 있다.

광명전기도 올해 전체 사업비만 200억원에 달하는 12MW 규모의 태양광사업을 가시화했고, 순수 태양광발전사업 외에 올해부터 플렉시블 CIGS(구리·인듐·갈륨·셀레늄) 박막 태양전지를 활용한 응용제품 개발도 본격화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

광명전기는 투과형 플렉시블 CIGS 박막 태양전지가 개발되면 일반 태양광모듈을 적용하기 힘든 드론이나 방위산업 등 특수 분야와 자동차, 하우스(커튼월), 방음벽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서전기전도 지난해 경기도 이천 신공장에서 초고압 시장 진출을 선언해 주목을 끌었다.

초고압 GIS(가스절연개폐장치), 개폐기, 직류송배전 기기 등 신규 아이템을 확대해 빌딩부터 플랜트, 발전소, 선박, 원자력, 자동제어시스템 등 토털 파워솔루션 공급자로 거듭나겠다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서전기전에 따르면 국내 개폐기·차단기 시장 규모는 2013년 기준 약 5조5000억원대로 추산되고, 해외시장은 7억9100만달러(2012년 기준)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1960년 설립돼 올해로 56년의 역사를 지닌 한광전기공업도 포화상태에 놓인 배전반 시장 대신 친환경 가스절연개폐장치(E-GIS) 분야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이미 10~15개에 달하는 C-GIS, MCSG(고압폐쇄배전반) 업체들과 경쟁하는 대신 앞으로 시장이 만들어질 E-GIS 또는 SIS(고체절연스위치기어) 시장에 선제적으로 뛰어들어 자격조건을 갖추면 GIS시장 후발주자로서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분석하고 있다.

유기현 한광전기공업 대표는 “GIS 시장진입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대규모 투자가 수반돼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시장진출을 결정했으며, 올해는 SIS 시험까지 마무리하고 E-GIS는 내년까지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압기 업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업체들이 다수 존재한다.

금강변압기는 한전 개폐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예정이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이 회사는 올해 안에 경기도 화성으로 이전하며 지상 패드 개폐기와 에코 개폐기를 본격 생산할 방침이다. 2003년 설립 이후부터 주력이었던 변압기 아이템에 개폐기를 더해 종합 중전기기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다.

임종봉 금강변압기 대표는 “개폐기 신규 개발과 시험비용에 약 5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라며 “한전 시장에 새로 진입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엘파워텍도 25.8kV 에코 부하개폐기 개발이 한창이다. 매출 200억원대의 이 회사는 현재 약 150억원을 투자해 경기도 화성 바이오밸리 공업단지 안에 대지 1만6000㎡, 건평 9000㎡ 규모의 새 공장을 연내 완공할 계획이다.

이곳에선 주력 아이템인 일반 유입변압기와 건식변압기, 수출용 변압기 등을 비롯해 새로 개발 중인 친환경 개폐기도 양산할 예정이다.

최성규 엘파워텍 대표는 “개폐기 신규 개발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와 경영내실화를 꾀하겠다”면서 “앞으로 5년 내 1000억원대 매출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외에도 변압기 업계에서는 몇몇 기업이 새로운 먹거리 발굴 차원에서 개폐기 개발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중전기기 업계의 리딩기업들이 잇달아 타 분야를 적극적으로 노크하는 것은 기존 주력시장의 경쟁과열로 이익이 줄어들면서 성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전반 업계의 경우는 생산의 주요 공정을 대부분 아웃소싱할 수 있게 되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업체 간 출혈경쟁이 가속화되자 상대적으로 시장전망이 밝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와 GIS 분야에 대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한전의 물량 확대 기대감으로 업체들이 난립되면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변압기 업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경기도 김포의 한 변압기 업체 대표는 “한전 물량이 예전 같지 않아 변압기만으로는 안정적인 성장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아무래도 개폐기 시장에 대한 전망이 상대적으로 밝기 때문에 기업들이 신규 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생존을 위해 경계를 넘는 것은 본능적인 일”이라며 “지금과 같은 중전기기 시장구조에서는 이제 단품을 팔아서는 내수나 수출 어느 것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타 업종을 노크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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