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욱 한양대학교 전자공학부 교수
이방욱 한양대학교 전자공학부 교수

1998년 개봉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문득 떠오른다. 개봉한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오마하 해변 상륙작전의 압도적인 장면이 지금도 최고의 전쟁영화 전투신으로 회자될 만큼 인상 깊은 영화이다. 특히 전쟁 중 적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로 진입하여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서도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고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며 임무를 완수하는 존 밀러 대위가 라이언 일병에게 한 마지막 한마디가 귓전을 때린다. “꼭 살아”

학력고사 세대로 점수에 맞추어 선택한 ‘전기공학’이 평생의 업이 되어버렸지만,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전기공학과 출신으로서, 요즈음 대학이 당면한 ‘전기공학과’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 전기공학과(부)라는 온전한 타이틀을 유지한 대학을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 힘들만큼 전기공학은 전기정보, 전기전자 혹은 전자전기, 전기전자컴퓨터, 전기제어, 융합전자, 전자시스템, 전기생체 등 전기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가져가기에는 어색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혹자는 전자공학 중심의 융합이 시대의 대세여서 그렇다, 혹은 전자가 빠지면 우수 고교생 유치가 어렵다, 전기공학과는 조금 재래식 느낌이 난다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본질은 거기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해외 유수 대학에서 여전히 ‘Electrical Engineerng’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자, 전기, 컴퓨터, 통신 전공이 융합되어 나아가는 것과는 달리, 국내 대학에서는 전기공학을 타이틀로 앞장서 내세우기가 영 만만치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서울 주요 대학에서 전기공학과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대부분 서울 주요 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과(부)는 건재하고 있으며, 설령 다른 이름이 뒤에 따라 붙더라도 기계라는 이름은 언제나 우선 순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고교생 선호학과 순위에서도 전기전자나 화학공학등을 제치고 공과대학 선호 1위 학과를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기계공학이라는 대명제하에 전통적 기계공학 관련 학문 분야 뿐만 아니라, 전기/전자/재료/금속 등 기타 분야를 기계공학 안에 융합하여 녹아내는 저력과 전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요즈음 뜨거운 이슈인 전기자동차만 봐도, 전통적인 자동차 분야 이외에도 전력변환관련, 전기 모터 관련, 전기 배터리 관련, 제어 및 컴퓨터 관련 교수진들이 기계공학과 내에 포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기자동차를 전기전자 관련 학과가 아니라 기계공학이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기계공학이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서, 전기, 전자, 컴퓨터, 제어, 금속, 화공 분야까지 그 안에 녹아내어 기술 및 제품을 창출해 나가는 미래 전략이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럼 전기공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서울 주요대학의 전기전자관련 학과의 전임교원에서 순수전기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변환, 전력전자, 전력계통, 고전압 공학 등의 전임교원 확보율을 조사해봤더니, 가장 많은 학교가 17%, 나머지 대부분이 10%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즉 순수전기분야 전공 전임교원의 태부족 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나마 전자전기, 혹은 전기전자라는 이름으로 아직은 명함을 내밀고 있는 전기라는 이름이 조금 더 세월이 흐르면 학과명에서 완전히 빠지지 않으리라 누구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필자는 전기공학이라는 아이덴티티 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전자, 통신, 반도체, 제어 등이 전기공학의 울타리 안에서 계속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 아니라, 전기공학을 기치로 공동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전기공학을 플랫폼으로 하는 차세대 산업 및 먹거리를 창출하여, 전기공학의 깃발아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역량 확보가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 아닐까? 지금 우리는 그동안 100여년 넘게 지속되어왔던 전기공급 방식 및 구조가 대변혁기에 들어서는 시기에 서 있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 분산전원 등장, 스마트 그리드, HVDC, 에너지 프로슈머 등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전기에너지 신세계가 눈앞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산업에서 요구하고 있고, 대학생들도 전기공학의 중요성에 다시 눈뜨고 있다. 이런 시대의 요청에 우리 전기인들도 응답하여야 할 시점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전기공학’ 구하기에 적극 동참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노력이 다방면으로 결실을 맺는다면, 조만간 어느 대학에선가 공과대학 ‘전기공학부’가 탄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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